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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생명의 옴부즈맨>제도를 제안함

해방조국에 정부가 들어섰지만 아직 이렇다 할 일거리가 없어 살기 어려웠던 6.25 전, 서울의 용산 쪽 한강다리(지금의 제일한강교)입구에는 “잠간만 참으시요”라는 팻말이 난간 양쪽 좌우로 써 붙여져 있었다. 요즈음 젊은 사람들이 만약에 그 팻말을 보았다면 어떤 생각을 할까가 자못 궁금하다. 생활고에 시달리다가 어쩔 수 없이 한강다리 난간 위에서 뛰어 내려 자살하는 사람이 많았기 때문에 그런 팻말이 걸렸으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할 것으로 짐작된다. 그만큼 그 당시의 우리네 생활은 어려웠지만 그 팻말 하나로 한 생명이라도 더 구해보고자 하는 갸륵한 뜻도 정부는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그런데 지금은 세칭 <최진실 법>이라는 것을 만들려는 움직임이 국회안에서 일어나고 있다. 세상이 변해도 너무나 많이 변한 것을 실감하게 된다. 이제는 생활고가 아니라 사이버 테러나 뇌물 스캔들에 휘말려 생기는 정신적 충격으로 자살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니 자살의 질적 변화가 와도 이만 저만이 아니다.

한해에 자살하는 사람이 1만명을 훨씬 넘는다고 한다. 이건 보통 일이 아니다. 정부가 관심을 가지고 세밀한 대책을 세워야 할 형편이 되었다. 어떤 형태의 죽음이건 한 사람의 죽음은 그 한사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한 가정의 슬픔과 사회적 부담을 가져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자살자가 이렇게 많도록 아무런 대책 한번 세워보지 않은 정부가 원망스러울 정도다. 그 수많은 교회와 사찰도 그 토록이나 몸집불리기에 바빴던 것만큼이나 생명운동에 열정을 쏟아 부었어야 하지 않았나 싶은 심정으로 원망스럽기는 마찬가지다. 또 공익 방송은 오락프로에 쏟아 붓는 예산의 몇 퍼센트나 생명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방송에 할애해 왔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가정에서는 부모나 남편이나 아내가 서로의 고민을 얼마나 터놓고 얘기해 보았는지 필자부터 반성 해 볼 일이다. 아무 누구도 자살자에게 돌을 던지며 비난할 수가 없다. 한 생명이 얼마나 고귀한 것인가를 가르치면서 끈질기게 살아남는 방법을 교육시켜 본적이 없기 때문이다. 교육의 근본 목적이 무엇일까? <루소>가 말한 것처럼 어떤 역경에도 살아남을 수 있는 사고(思考)를 길러 주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것이 곧 지혜다. 참 교육의 기치를 내걸고 출발한 전교조 선생님들은 다 어디로 갔는가? 붉은 머리띠 두르고 촛불집회에 나갈 것이 아니라 교실에서 어린이에게 생명의 소중함을 가르쳐야 하지 않겠는가? 유모차에 애기를 태우고 촛불집회에 나가는 무디고도 교활한 신경으로 그 아이가 건전하게 자라기를 바라는가? 어린이 학대죄로 당장 구속되어도 할 말이 없는 행동이다. ‘묻지 마 살인’이 왜 생겨나는가? 그런 식으로 자라도록 방치하거나 자극했기 때문이다. 도대체가 자기 집 욕실에서 죽는데도 아무 누구도 눈치를 채지 못하였다니 말이나 되는 일인가?

가정도 사회도 국가도 생명을 존중하는 풍토를 만들어 주는 데에 인색하다. 지금부터라도 시작해야  할 일이다. 6.25전에는 “잠간만 참으시요”라는 팻말주위에 혹시나 자살용의자가 나타나지나 않는지 경찰이  순찰까지 하는 정성과 배려도 있었던 것으로 필자는 기억하고 있다.

필자는 여기서 <생명의 옴부즈맨(ombudsman)제도>라도 만들어 보자고 제안하고 싶다. 시민의 고충을 듣고 해결책을 모색해 가는 방식 그대로 자살의 기미가 있는 사람을 찾아가 상담하는 제도 말이다. 가족이건 친지건 친구이건 동료이건 인생 절벽에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사람이 있을 경우 아무라도 <생명의 옴부즈맨>에게 신고한다. 그러면 그가 찾아가 상담하고 해결책을 찾아 주는 제도 말이다. 북구(北歐)에서처럼 가방 하나를 들고 터덕터덕 먼지 나는 시골길을 걸어 어느 산골의 자그마한 오두막집을 찾아 가는 옴부즈맨을 상상해 보라. 아무런 해결책이 없어도 상담현장에서 고민하는 옴부즈맨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살아 있는 우리는 조금이라도 위로 받을 수 있지 않겠는가?  

김중위
초대환경부장관 / 고려대학교 초빙교수

53호
2008.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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