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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지중해 찬가: Savina Yannatou

르네상스와 바로크 음악의 권위자이며 재즈 음악가로 유명한 사비나 야나토우(Savina Yannatou, 1959년생)가 그리스 밖에 알려진 것은 테살로니카(Thessaloniki) 대학에서 학술 프라젝트의 일환으로 세파디(Sephardi) 민요의 레코딩을 의뢰한 이후의 일이다.

자작곡이나 현대가곡, 오페라를 부르던 그녀에겐 그리스 민요도 낯설었고 세파디 유태인의 민요는 더욱 그러했다. 나름대로 조사를 하면서 그녀는 세파디 민요를 부르려면 지중해 전역의 음악을 이해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른다. 1492년 스페인에서 추방되어 지중해 전역으로 흩어진 세파디인의 음악엔 그들이 머문 모든 곳의 음악이 녹아있다. 프라젝트의 결과는 1994년 ‘살로니카의 봄(Anoixi sti Saloniki)’이란 앨범으로 발표된다. 그 프라젝트 이후 야나토우는 지중해 문화의 단일성에 주목한다.

1994년 이후 발표된 야나토우 앨범은 그리스, 코르시카, 팔레스타인, 알바니아, 불가리아, 키프러스, 이스라엘 등 지중해변 10여 개국의 민요가 병치되는 구성을 취한다. 흑해의 음악과 유사한 알바니아 민요, 소아시아의 것과 비슷한 스페인 자장가, 터키풍의 키프러스 노래, 팔레스타인 멜로디에 히브리어 가사가 붙여진 자장가 등 야나토우의 지도에서 정치, 종교적 경계는 무의미하다.

로마, 비잔틴, 이슬람 제국 등 정복과 이주의 역사가 만든 공통의 문화는 야나토우의 앨범이 민요의 잡다한 나열이 아니라 공통점을 가진 하나의 흐름으로 들리도록 한다. 그러나 야나토우는 공통점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는 민요의 모티브를 ‘차용’한 창작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문화의 개별성을 그대로 보여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개별성을 살리기 위해 그녀는 그 문화마다 고유한 악기, 리듬, 멜로디, 대위법 형식 등 스타일은 물론 가사의 언어까지 그대로 재현되어야 한다고 본다. 가사가 번역되면 곡의 느낌도 바뀌기 때문이다. 다양한 음악 스타일을 소화하는 것은 힘들지만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하지만 한 사람이 10여 개의 언어를 그것도 방언까지 구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정확한 발음으로, 단어의 의미를 살려 감정을 싣는 것은 가능하다.

더 나아가 스타일마다 다른 창법, 곡마다 다른 정서를 표현하기 위해 그녀의 음역과 음색은 다채롭게 변한다. 아르메니아의 사랑노래를 부르는 그녀의 맑고 애잔한 미성의 소프라노는 여성 보컬의 꿈이다. 그러나 코르시카 노래를 굵은 저음으로 으르렁거리는 그녀는 날카롭고 음울한 에디트 피아프(Edith Piaf)이며, 남 이태리에서 유래한 그리스 민요를 부를 때의 그녀는 늙고 갈라진 목소리로 투덜대는 노파이다. 오페라적인 정서 표현의 깊이는 더욱 인상적이다. 고아가 된 소녀, 사랑에 고통 받는 여인, 전쟁에 지친 이, 결혼을 앞둔 신부 등 야나토우가 표현하는 캐릭터의 설득력은 그녀의 앨범이 사라져가는 민요의 기억이 아니라 지금도 살아 숨쉬는 오늘의 음악이 되도록 한다.

그러나 야나토우는 곡의 원형을 그대로 재현하는 것만이 그 곡의 의도를 살리는 것은 아니며, 곡의 의도를 더 잘 표현할 수 있다면 그 곡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음악적 구조를 바꾸는 것이 더 충실한 재현이라고 본다. 그녀의 스캣(scat)이 더해진 프리 재즈적인 변형은 원곡을 아는 이들에겐 가끔은 당황스럽다. 그러나 원형이 무엇인가는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같은 세파디 민요라도 프랑스, 터키, 스페인 등 장소와 시간에 따라 다르게 불려져 왔다. 야나토우의 기준은 어떻게 곡의 의도를 지금의 청중에게 더 쉽고 충실하게 전하는 가이다.

야나토우가 그리는 지중해에서 문화의 차이는 인류라는 보편성 위에서 가능한 것이다. 그러나 보스니아 내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오랜 갈등 등 종교, 정치, 문화로 세계를 나누는 '차이'가 지배하는 현실의 지중해에서 보편성은 잊혀진 가치이며 이상주의자의 꿈에 불과하다. 보편성이 부정되는 현실에서 야나토우가 보여주는 과거의 유산은 무의미하고 비현실적일지 모른다. 그러나 그것이 비현실적인, 꿈에서만 가능한 것이기에 그녀의 음악은 아름답다.

추천앨범: Sumiglia (2005)

16호 (2005.11.30)

이석우 cura_lee@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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