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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누구도 미워하지 않은 자의 죽음: 캐런 카펜터(Karen Carpenter)

카펜터즈의 음악은 지금 여기의 행복한 사랑이 아니라 잊혀진 사랑과 어제의 음악이다. 그러나 캐런의 그리움이 머무는 곳은 어딘가에 ‘있었던' 사랑이 아니라 어디에도 ‘없었던’ 무언가이며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기에 캐런의 그리움은 공허하다. 그러나 그 공허함은 카펜터즈 음악의 힘이다.


유령의 노래



영화 ‘파티(1968)’의 주인공이 한 말처럼 캐런 카펜더(Karen Carpenter, 1950-1983)는 “천사의 목소리를 가졌다.” 그러나 땅 위에 천사가 없는 것처럼 캐런 카펜터는 이 세상에 없는 것을 노래했다.

2차대전이 한창이던 1943년 빙 크로스비가 처음 발표한 ‘크리스마스는 집에서(I’ll be Home for Christmas)’란 곡은 크리스마스의 표준 레퍼토리이다.

캐런은 누구나 아는 명절의 노래를 보편적인 ‘상실’의 노래로 뒤집는다. 캐런이 “꿈에라도 보인다면”이라 말할 때 꿈에서 고향 집의 가족을 만나 즐거운 명절을 보내는 미군병사는 꿈에서만 볼 수 있는 연인을 그리는 제인 에어가 되고 집 나간 아들을 생각하는 어머니가 되며 일 때문에 크리스마스에도 집에 갈 수 없는 세일즈맨이 된다.

누가 언제 듣는가에 따라 곡의 의미가 달라지는 것은 캐런이 잃어버린 것이 가져본 적이 없는 것이기에 무엇이든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둠의 힘


라이브 공연에서 캐런은 드럼 세트 뒤에 숨어 아무 제스처 없이 그저 노래만 했다. 행복을 말할 때도 우수를 노래 할 때도 캐런의 표정은 변하지 않았다. 그리고 캐런의 무표정은 공허함이란 상처를 가리는 가면이었다.

캐런의 노래가 무표정한 것은 어느 정도는 콘트라알토라는 캐런의 음역 때문이다. 바리톤이나 알토는 음이 낮은 대신 부드럽고 온화하며 풍부한 소리를 내지만 정서적으로 어둡고 가라앉아 있다. 그러나 콘트라알토의 가수가 많은 것도 아니지만 적지도 않다. 카펜터의 콘트라알토를 감동적이라 하는 것은 숨김없이 분명하게 드러나는 슬픔 때문이다. 우리 마음 속 깊이 가라앉아 자신도 모르던 어둠을 끄집어내는 카펜터즈의 슬픔은 캐런 자신의 슬픔이다.


슈퍼스타의 그려진 미소


리차드의 재능은 카펜터즈의 시작이었지만 캐런은 그룹의 존재이유였다. 뛰어난 프로듀서로서 리차드는 그룹의 두뇌였고 그의 편곡은 카펜터즈의 진정한 독자성을 가능하게 했다. 그러나 그룹의 사운드를 지배하는 것은 캐런의 보이스였다.

리차드의 편곡 때문에 당시 평론가들은 카펜터즈의 음악을 아이스크림 음악이라며 평가절하했다. 쉽게 듣고 잊어버리면 그만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리차드의 만들어진 광택을 제거하면 캐런은 그저 그런 유행가수가 아닌 위대한 음악가가 된다.

리차드가 편곡한 ‘슈퍼스타’의 밝고 장난스러운 피아노 반주는 곡이 진행될수록 캐런의 깊게 가라앉은 보이스와 어울리지 않는다. 다른 곡의 편곡에서도 캐런의 우울한 보이스는 무시된다. 진부하고 맥 빠진 단조의 바다에서 과묵한 캐런의 탄식은 묻혀버린다.

캐런의 내면과 리차드의 만들어진 광택 사이의 모순을 가장 잘 잡아낸 것은 소닉 유스(Sonic Youth)의 ‘슈퍼스타’ 커버이다.

‘슈퍼스타’는 카펜터즈의 창작이 아니다. 1969년 처음 만들어진 이 곡을 1971년 신인이던 배트 미들러가 부르는 것을 TV에서 본 리차드는 가사를 수정하고 편곡을 다시 한 후 캐런에게 넘겼다. 냅킨에 적힌 가사를 바탕으로 녹음은 한번에 끝났고 카펜터즈의 ‘슈퍼스타’는 그 해 빌보드 싱글차트 2위에 오른 후 그래미 상을 수상하였다.

많은 가수들이 ‘슈퍼스타’를 불러왔지만 카펜터즈의 버전을 듣고 다른 버전을 들으면 어색 하게 들린다. ‘슈퍼스타’는 순회공연 중인 팝 스타와 팬의 하루 밤 불장난을 스토리로 하는 곡이다.

그러나 “외로움은 그렇게 슬픈 것이다”란 가사가 무엇을 말하는지 캐런과 소닉 유스는 알고 있었지만 리차드는 이해하지 못했다.



“당신의 기타는 이렇게 달콤하고 맑게 울리는데 당신은 여기 없고 라디오만 있군요.” 캐런은 한 때의 불장난을 배신감으로 해석해 혼자 남겨진 외로움의 드라마로 바꾸었다. 소닉 유스의 무어는 여기서 더 나아간다.

쇠톱을 긁는 것 같은 전자기타의 비틀린 피드백, 신디사이저의 화이트 노이즈, 고음과 저음을 거세해 손수건으로 입을 가리고 전화에 대고 말하는 유령 같은 보컬은 (팝스타라는 환상을 쫓는) 스토커의 불길한 갈망을 그린다. ‘베이비 베이비 베이비’ 코러스를 무어가 부를 때면 섬뜩하다. 소닉 유스가 보여주는 것은 카펜터즈 음악의 진실이다.


환상의 미학


미국의 70년대는 폭동, 시위, 암살 그리고 베트남전쟁의 시대였다. 그러나 70년대를 살았던 카펜터즈의 음악에서 시대의 어두움은 투명하게 거세되어 있다. 1970년 캄보디아 폭격에 항의하는 대학생들이 켄트 대학에서 죽었을 때 카펜터즈는 출세작인 ‘Close to You’를 발표했고 워터게이트가 한창이었던 1974년 카펜터즈는 백악관에 초대되었다.

카펜터즈는 미국이 베트남에서 철수해야 한다고 말하지 않았고 당시 팝의 주류였던 락 밴드들처럼 기타를 부수고 브래지어를 불태우지도 않았다. 그들의 ‘건전함’ 때문에 닉슨 대통령은 카펜터즈를 (이젠 늙어가는) “젊은 미국의 정점(young America at its very best)”이라 말한다.

음악이 정치적일 필요는 없다. 정치적이었던 락은 당시 팝의 주류였다. 그러나 락은 남성의 음악이었고 카펜터즈의 시장은 달랐다. 70년대 25-29세의 미혼여성인구와 이혼율은 2배가 되었다. 당시 카펜터즈와 같은 부드러운 음악은 젊은 여성들을 위한 일종의 정서적 치료제 역할을 했다.

카펜터즈의 팬들은 전통적인 가족이 해체되어가는 시대에 살았고 카펜터즈는 저물어 가는 미국의 전통적 가치를 대표했다. 그들은 카펜터즈를 들으며 사라져가는 과거를 회상했다. 그러나 현실이 거세된 카펜터즈의 음악은 환상이었고 그 환상이 캐런을 죽였다.


비극의 씨앗: 통제의 드라마


카펜터즈의 마케팅 컨셉은 ‘이웃집 아이들’이란 친숙함이었고 도덕적인 ‘건전함’이었다. 그들은 언제나 교회에 갈 것처럼 말숙하고 무난한 의상을 입었으며 사랑에 대해 노래하지만 섹스는 금기였다. 당시 주류음악이던 락처럼 떠들썩한 세상에서 카펜터즈는 부엌에서 쿠키가 타고 있다고 걱정한다.


모범생 이미지의 카펜터즈


캐런은 가족, 친구 그리고 팬에게 친절하고 좋은 사람이며 마케팅이 만들어낸 이미지대로 ‘완벽’하게 살려 했다. 그러나 그녀의 노력은 보상받지 못했다.

카펜터즈 가족을 아메리칸 드림으로 홍보한 당시 언론은 지금 와서 생각하면 조작일 뿐이다. 카펜터즈의 광고된 건전함은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바비 인형처럼 만들어진 것이었다.

캐런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그녀의 목소리와 어머니의 사랑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어느 것도 가질 수 없었다. 어머니는 한번도 캐런을 칭찬한 적이 없었다. 리차드는 어머니의 모든 것이었다. 3살에 피아노 신동이었고 8살에 피아노를 마스터하고 고등학교 때 자신의 밴드를 만들었고 지역 밴드의 멤버였던 리차드는 어머니의 자랑이었고 그녀는 아들을 유명하게 만들기 위해 모든 것을 희생했다.

가족에게 캐런은 ‘머리를 빗어주고 어디서든 옷을 벗길 수 있는’ 바비 인형일 뿐이었다. 가족은 그녀에게만 거들먹거리고 고압적이면서 무관심했다. 애정도 없으면서 ‘완벽한 아이’가 되기를 요구하는 가족들 앞에서 캐런은 원하지 않는 역할을 해야 했다.

가족의 인형이었던 캐런은 한 사람의 어른으로도 음악가로도 자립하지 못한 채 바비 인형을 가지고 노는 어린 시절에 붙잡혀 있었다. 어른이 되지 못한 캐런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은 그녀의 몸무게 밖에 없었다.


위선의 엔딩


토드 헤인즈 감독의 데뷔작 ‘슈퍼스타(1987)’는 캐런의 삶과 그녀의 거식증을 다룬 영화이다. 이 영화에선 사람이 아니라 바비 인형이 연기한다. 3살에서 10살 사이의 미국소녀는 보통 8개의 바비 인형을 가지고 있다. 1959년 처음 출시된 이래 베스트셀러 인형이 된 바비 인형은 아이들에게 불가능한 이상을 강요한다. 바비 인형은 ’36:18:33’이란 비현실적인 체형(그런 체형이면 정상보다 체지방이 22% 부족하여 월경이 불가능하다)을 현실이라 말하며 1992년 출시된 말하는 바비 인형(Teen Talk Barbie)은 ‘입을 옷이 모자라’, ‘쇼핑하고 싶어’, ‘수학이 싫어’와 같은 여성에 대한 고정관념을 무한 반복한다.



바비 인형이 된 캐런


스타의 병 또는 부자의 병이라 불리는 거식증은 성공했지만 자신감이 없는 여성들의 병이다. 거식증은 공통된 특징은 자신을 드러내는데 서툴다는 것이다. 캐런은 택시를 부르는 것도 레스토랑에서 주문하는 것도 수줍음 때문에 못하는 이웃집 소녀 같았다. 캐런은 남들 앞에선 쾌활했지만 다른 감정은 드러내지 않았다. 캐런은 남들을 돌보는데 열심이었지만 자신만은 아니었다.

그리고 거식증의 또 다른 공통점은 권위주의적인 부모이다. 그들은 자식에게 불가능한 이상을 강요한다.

가족이 그룹의 ‘깨끗한’ 이미지에 맞추도록 캐런을 몰아붙일 때 캐런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은 자신의 몸 밖에 없었다. 거식증은 ‘신체에 대한 파시즘’이다. 그녀는 자신의 몸을 통제하기로 결정했고 거식증에 걸렸다. 힘 없는 자가 힘을 가질 수 있는 곳은 자기자신 밖에 없다. 그녀가 먹고 싶지 않다면 아무도 그녀가 먹게 할 수 없다. 캐런 자신이 문제를 알았을 때 그녀의 거식증은 멈출 수 없게 되었고 그녀의 병은 그녀를 지배했다.

그녀의 거식증을 알았을 때 그녀의 가족은 그녀가 먹을 것을 강요하면서 몸무게를 재곤 했다. 그러나 자신만의 공간에 돌아오면 그녀는 설사약(나중엔 구토제)을 먹었다. 리차드에게 캐런의 병은 그룹에 위협이 되고 자신의 커리어에 해가 되는 이상이 아니었다. 리차드 자신이 호모이고 마약중독인 것은 상관 없지만 거식증 때문에 ‘Top of the World’를 부르다 무대 위에서 쓰러진 캐런은 카펜터즈의 깨끗한 이미지에 어울리지 않았다.



해골이 된 캐런


1975년 캐런이 무대에서 쓰러질 무렵 그녀를 본 팬들은 헛바람을 들이키며 그녀를 ‘노래하는 해골’이라 불렀다. 유전적으로 통뼈인 캐런은 마른 체형과는 어울리지 않았지만 무리한 다이어트로 생명이 위험한 20kg 저체중이었다.

리차드는 동생의 보이스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고 그녀의 표현력을 최대로 끌어내는 편곡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룹의 사운드를 책임졌던 리차드는 캐런을 악기로만 생각했다. 캐런이 뉴욕에서 솔로 앨범을 녹음할 때 필 래먼이 그녀를 동등한 음악가로 대할 때 캐런은 놀라워했고 그녀의 삶에서 가장 행복한 때였다. 리차드는 곡을 녹음하기 전에 캐런과 어떤 의논도 하지 않았고 스튜디오에서 처음 악보를 보는 경우도 허다했다.

히트제조기로서 리차드의 운이 다한 1975년부터 그룹의 인기는 떨어져 갔고 약에 취한 리차드는 1978년 더 이상 공연을 할 수 없게 되었다. 노래를 부르고 싶었던 캐런은 솔로 앨범을 내기로 했고 리차드가 자신의 결정을 축복해주길 원했다. 그러나 말 잘 듣는 동생의 갑작스런 ‘배신’으로 생각한 리차드는 몇 달 간 무응답으로 일관했다.

그리고 캐런의 솔로앨범이 완성되었을 때 소속사의 경영진과 리차드는 비판적이었다. 그 중에서도 리차드는 가장 비판적이었다. 곡이 약하고 키(key)는 캐런의 보이스엔 너무 높다고 말했고 몇 곡의 화음에 대해선 캐런이 카펜터즈 사운드를 ‘훔쳤다’고 비난했다.

뉴욕에서 그녀는 다른 사람들처럼 잘 먹었고 몸무게는 정상이었다. 그러나 첫 곡을 들고 LA로 돌아가 가족에게 들려준 후 다시 뉴욕에 왔을 때 그녀는 아우슈비츠에서 돌아온 것 같았고 그녀의 방은 구토제로 뒤덮혔다.

캐런의 솔로앨범이 걸작은 아니었지만 그녀는 카펜터즈의 이미지에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디스코와 섹시한 악녀의 이미지가 지배하던 당시 팝 시장에는 더 이상 ‘얌전한 모범생’의 이미지는 어울리지 않았다. 캐런의 친구인 올리비아 뉴튼존도 그렇게 변했다. 그러나 리차드는 이해하지 못했다. “이 앨범을 리차드에게 바친다. 나를 받아줘. 이 앨범은 오빠와 나를 위한 것이야.” 캐런이 헌정사이다.

솔로앨범이 사산된 후 캐런은 결혼으로 탈출구를 찾았지만 탈출은 실패했다. 1980년 부동산업자와 결혼한 캐런은 1981년 이혼서류에 사인하는 날 아침 시체로 발견되었다.


이석우

No.43
2008.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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