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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염세의 풍경: 新居昭乃(Arai Akino)

아라이 아키노(新居昭乃, 1959년생)의 음악은 아름답다. 그러나 그것은 덧없는 아름다움이다. 그녀의 음악에서 가장 먼저 들리는 것은 아름다운 소프라노와 멜로디이지만 진정한 아름다움은 그녀가 그리는 풍경에 있다. 유치원 시절 음악을 들으면 풍경이 그려지는 것을 발견하면서 음악에 관심을 갖게 된 아라이 아키노의 음악은 어떤 풍경이나 이야기를 떠오르게 한다. 데뷔 당시(1986) 가수로선 주목 받지 못했지만 작곡능력을 인정받아 이후 20여 년간 '로도스 전기(ロ-ドス島戰記)', 'Macross Plus', '바람의 대륙(風の大陸)', 'Noir', ‘地球防衛家族’ 등의 애니메이션과 Falcom, KOEI 계열 게임의 OST 의뢰를 받게 되고 그 분야의 거장으로 불리게 된 것은 그녀 음악의 그러한 연상력(聯想力) 때문이다.

그녀 음악에서 풍경이 그려지는 것은 느릿하고 조용하게 말을 거는 듯 속삭이는 보컬 스타일 때문이기도 하지만 일상의 구체적 사건에서 소재를 찾는 그녀의 작풍이 더 큰 이유이다. ‘降るプラチナ(내리는 백금)’란 곡은 공원을 거닐며 노을을 보는 것을 좋아하는 그녀가 어느 초여름 날 여우비의 빗방울 하나하나가 석양을 배경으로 빛나면서 익숙한 경치가 갑자기 낯설어지고 세상이 정화되어 승화되는 것처럼 보인 것을 모티브로 한 작품이다. 하늘이 지나치게 밝으면 어둡게 생각되고, 눈에 익은 거리라도 사람의 모습이 없으면 갑자기 낯설게 느껴지는(‘白日夢’) 현실의 사건이지만 비일상적이어서 비현실적인 이미지가 아라이 아키노의 풍경이다.

아라이 아키노가 노래하는 곳은 높게 둘러진 울타리가 있고 하나뿐인 창으로 세상을 보는 그녀의 내면이며 그곳에서 현실의 혼탁한 컬러는 빛의 삼원색(RGB)으로 분해되고 다시 모든 색을 담지만 순수한 컬러인 흰색으로 승화된다. 그러나 순수한 흰색은 그녀의 내면에서만 가능한 것이며 낮에 뜬 달처럼 건드리면 부서질 것 같이 덧없는 아름다움이다. 그러나 그녀가 내면에서 현실로 향할 때 그녀의 음악은 섬뜩하게 들린다.

‘仔猫の心臟(고양이의 심장)’은 눈이 멀고 혼자 서지도 못하는 고양이를 주워 이틀간 돌봤지만 잠자듯이 죽은 이야기를 쓴 곡으로 고양이를 키워본 사람이면 아픈 기억이 떠오르는 곡이다. 그러나 가사와는 다르게 보컬의 정서와 멜로디는 귀엽고 장난스럽다. 하지만 밝은 멜로디와 대조적으로 음산하게 으르렁거리는 전자기타 때문에 곡의 진행은 불협화음을 이루면서 섬뜩하고 착란적(錯亂的)인 풍경을 만든다. 사랑에 빠진 소녀의 감정을 그리는 ‘WANNA BE AN ANGEL’은 밝고 아름다운 러브송으로 들린다. 그러나 고의로 음정을 어긋나게 불러 레이어 간에 불협화음을 유도하는 아라이 아키노 특유의 스타일과 배경에서 낮고 희미하게 으르렁대는 전자기타는 위태한 분위기를 만들어 소녀의 사랑이 ‘나는 사랑하고 있다’가 아니라 현실적 장해로 이루어지지 않겠지만 ‘나는 사랑할 것이다’ 란 결의라는 것을 폭로한다.

아라이 아키노 음악의 원점은 샹송이다. 엷은 장밋빛 수정이 떠오르는 20대 초반에 고정된 아름다운 음색, 다운템포의 아름다운 멜로디가 강조되는 작풍, ‘은하철도 999’의 OST로 제격일 것 같은 아련하고 쓸쓸한 정서 등 아라이 아키노 음악의 첫인상은 우아하고 세련된 사운드, 센티멘탈하고 낭만적이며 에로틱한 분위기 등 샹송이라면 연상되는 느낌과 비슷하다. 그러나 고의적으로 현실과 거리를 둔 풍경은 그녀의 음악을 글래머 미녀처럼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사라져버릴 것 같은 요정처럼 ‘예쁘장’하다고 느끼게 만들며, 존재하지만 현실감 없이 공기처럼 거기에 있는 음악으로 만든다.

아라이 아키노 음악을 그림으로 그린다면 나른한 오후, 흰 레이스가 달린 커튼이 흔들리는 창문으로부터 방 전체에 저녁 햇볕이 연하게 물드는 실내가 그려질 것이다. 일상을 소재로 한 그림이 아름답다고 느끼는 것은 지속될 수 없는 순간의 아름다움 때문이듯, 아라이 아키노의 음악이 아름다운 것은 영원하지 않기 때문에 소중한 순간의 아름다움 때문이다.

추천앨범: Collection Album RGB (2002)


이석우
No.34
2007.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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