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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彼岸의 소리: Mari Boine

핀란드인과 스칸디나비아인에게 쫓겨 그들의 순록과 함께 북극으로 밀려난 사미(Saami)인의 삶은 지붕 없는 텐트에서 순록가죽을 덮고 신성한 북을 치며 만물의 신들과 샤먼을 믿는 척박하지만 만족스런 것이었다. 그러나 스웨덴과 노르웨이의 지배와 함께 들어온 기독교 선교사들은 샤먼을 마녀로 몰고 신성한 북을 태우면서 그들의 삶을 미개한 것으로 낙인 찍는다.

가장 유명한 사미인이며 노르웨이의 국보라 불리는 마리 보이너(Mari Boine Persen, 1956년생)는 그녀의 음악보다 기행 때문에 더 유명하다. 노르웨이 정부가 사미인에게 사과할 것을 요구하고 색다른 장식품이 되기 싫다며 1994년 릴리함메르 동계올림픽의 개막식 공연을 거절했으면서 이번엔 다르다며 2002년 왕자의 결혼식 공연은 수락한 그녀는 2003년 Sigur Ros같은 쟁쟁한 아티스트를 제치고 수상한 스칸디나비아 음악인의 노벨상, 노르딕 음악상(Nordic Music Prize)의 상금으로 낚시보트를 장만한다. 음악 외적인 에피소드로 더 유명한 그녀가 음악을 하게 된 것 역시 엉뚱하다.

교사로 일하던 보이너가 음악을 시작한 것은 대인관계 장애로 정신과를 다니면서부터이다. 학교에선 자신의 말과 문화를 부끄러워하고 교회와 집에선 순종적인 여자가 되라고 배운 보이너는 자신감이 없었고 사람을 대하는 것이 어려웠다. 노래와 춤은 얌전한 여성이 할 것이 못되고 사미음악은 악마의 음악이라 배운 보이너가 사미음악, 요익(Yoik)을 선택한 것은 배운 대로 살아온 자신에 대한 저항이며 사미인으로서 인간으로서 긍지를 갖기 위해서였다.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노래형식인 요익만큼 이해 받지 못한 음악도 드물다. 북이 쓰이기는 하지만 거의 무반주이며 스캣의 비중이 높고 두세 개의 모티브가 즉흥적으로 무한변주될 뿐 악상을 제시, 전개, 종결하는 어떤 형식도 일정한 박자도 없기 때문에 리듬감 없는 랩의 중얼거림에 가까운 요익은 유럽인에겐 헛소리나 악마의 음악일 뿐이었다. 그러나 요익은 열등한 것이 아니라 다를 뿐이다.

가장 가까운 형식인 인디언 챈트처럼 요익 역시 샤먼의 굿에서 발전한 것이다. 샤먼 음악에서 가장 이해하기 힘든 것은 13, 17, 9 등 멋대로 변하는 박자이다. 전위음악에서 불규칙한 박자는 정보의 기본단위인 시간의 인지를 교란하여 몽환적인 느낌을 만드는 수단이다. 그러나 샤먼 음악에서 템포의 빠르기와 강도의 변화는 샤먼 자신의 심리에 자극을 주어 접신을 돕는 수단이다. 샤먼에게 음악은 유럽음악처럼 자기표현의 매체가 아니라 접신을 돕고 접신된 상태의 심리적 이미지를 그리는 수단이다. 그러므로 만물의 영이 대상인 샤먼의 음악에서 청중이 전제된 유럽음악과 같은 음악적 사운드와 노이즈의 구분은 무의미하다.

샤먼의 굿에서 영이 음악으로 현신하듯 사미인의 세계에서 만물은 이름과 요익을 갖는다. 이름이 무엇에 대한 설명이 아닌 그것 자체의 화신이듯 요익은 사람이나 사물에 대한 설명이 아니라 그것 자체의 이미지이다. 이름없는 사람이 없듯이 사미인에겐 자신만의 요익이 있었다. 1904년 출판된 민속지에는 한 중년여성의 요익 79편이 채록되어 있다. 버릇없는 아들, 그림같이 예쁜 딸, 변덕스런 이웃, 존경스런 교장, 뻔뻔한 여편네, 수줍은 처녀, 늑대처럼 동네를 배회하는 남자, 바람 속을 걷는 순록 등 그녀의 요익은 가사와 ‘헤이-거-롤-라아’ 등의 스캣, 보컬톤, 멜로디, 박자 등의 음악적 어휘로 그린 그녀 세계의 미니어처이다.

사미어로 불려지며 보컬톤의 정교한 변화가 특징인 요익의 창법과 멜로디 형식을 따르지만 바이올린, 베이스, 키보드, 기타, 인디언 플루트 등의 악기가 쓰이고 락과 아프리카, 남미 리듬이 동원되며 재즈 어법이 사용되는 보이너의 음악을 요익이라 보기는 힘들다. 분노가 내뿜는 에너지가 인상적인 두번째 앨범 ‘Gula Gula (1989)’는 락의 어법이 지배적인 데뷔 앨범처럼 음악이 대상 자체가 되는 요익보다는 세계에 대한 개인의 감정을 표현하는 팝에 가깝다. 보이너의 음악에는 팝의 미학과 샤머니즘의 미학이 공존하지만 팝의 미학이 지배적인 곡이 더 강하게 다가온다. 그것은 눈에 보이는 것만 믿는 우리에게 샤머니즘 미학은 미지의 것으로 영원과 죽음은 우리가 아는 시간 밖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오늘의 음악인 팝이 영원한 사랑을 말하더라도 실제로 그 사랑의 시간은 ‘지금, 여기’이고 죽음은 우울함의 은유에 불과하다.

그녀의 곡 중 가장 강렬한 ‘Boadan Nuppi Bealde (피안(彼岸)으로부터, 2003년)’은 샤머니즘 미학이 시대의 한계 안에서 표현가능한 최선이다. 전설적인 재즈 색스폰주자, 얀 가바렉이 참여한 이 트랙은 피안의 영적 존재를 상징하는 섹스폰과 此岸에서 그 영을 부르는 보이너의 대위법적 사랑을 그린다. 하지만 배경에 깔린 신디사이저의 안개 같은 소리처럼 그들은 잡힐 듯하면서 너머에 머물 뿐이다. 그러나 보컬이 키보드와 색스폰을 압도하는 ‘헤이-헤이-헤이’란 스캣의 시작과 함께 보컬의 인격이 사라지고 피안의 영이 보컬에게 현신하면서 피안과 차안이, 나와 너의 영혼은 만난다.

후기로 갈수록 음악이 대상 자체가 되는 요익의 미학을 구현한 곡이 늘어나지만 보이너란 개인이 강하게 표현된 초기 곡만큼의 힘과 감동은 없다. 그러나 팝의 미학과 샤머니즘의 미학이 균형을 이룬 ‘Boadan Nuppi Bealde’는 그녀의 어떤 곡보다도 강렬하다. 그것은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한계 안에서 샤머니즘 미학이 표현되기 때문이다. 팝이나 재즈의 어법을 쓴다고 요익이 아니라 할 수는 없다. 요익인가 아닌가는 미학의 문제로 팝과 샤머니즘의 미학이 조화되기보다는 서로 겉도는 보이너의 음악이 요익인가란 물음에 부정도 긍정도 할 수 없는 것은 눈에 보이는 것만 믿는 이 시대의 한계 때문이다.

추천앨범: Eight Seasons (2003)

이석우

No.39
2007.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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