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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수필] 부활절 - 정연숙



머리 손질을 하러 미용실에 가는 일을 나는 언제나 며칠씩 벼른다. 그러다 문득 거울 속의 내 모습이 이건 정말 아니다 싶거나 긴한 약속이 있으면 후닥닥 서두는 것이다.
부활절 아침. 특별히 예쁘게 하고 미사를 드리고 싶었다. 3시간, 충분한 시간이다. 상가 지하 주차장은 텅 비어있었다. 머리 손질을 끝내고 산뜻한 기분으로 주차장을 빠져 나왔다.    차가 지상으로 막 나가려는 순간 급브레이크를 밟아야했다. 오르막이라 무심코 액셀러레이터에 힘을 주었으면 사고 날 뻔 했다. 승용차 한 대가 출구를 막고 서 있다. 여러 가지 황당한 경우를 당해 봤지만 이런 일은 처음이다.
차를 세우고 내리려니 경사가 심해서 힘이 든다. 약 오른 고양이가 발톱을 세운다. 작은 상가라 주차관리인도 없다. 상황은 더욱 기가 막힌다. 주차장 진입로에 가득 일렬주차가 되어 있다. 암튼 지금은 출구를 막은 차 한 대가 문제다.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자, 마음을 가라앉히자. 오늘은 좋은 날이다. 연락처가 있네. 살았다. 발신음이 여러 번 울린다. ‘전화를 받지 않아…….’ 번호를 잘 못 눌렀나? 다시. 마찬가지다. 문자를 보낸다. 응답이 없다. 또 발신음에 희망을 건다. 이럴 수가!  
차를 뱅뱅 돌면서 들여다본다. 교회 리플릿이 보인다. 아하, 상가 이층부터가 다 교회로구나. 이제 됐다. 차번호를 적은 종이를 푸른 신호처럼 흔들며 교회로 올라간다. 조용하다. 조심스럽게 소리 나지 않게 뒷문을 빼꼼 연다.
누가 나온다. 남자는 검지를 입술에 세우고 있다. 내가 속삭인다. 그도 속삭인다. ‘예배중이라 안 됩니다.’ 그리고 그는 문을 닫는다. 암담하다. 그래, 예배 중에는 안 되지.  
하릴없이 내 차에 들앉는다. 다시 전화를, 문자를, 그 길밖에 없다. 감감무소식. 약 오른 고양이의 목덜미를 쓰다듬는다. 부활절이다. 예배중이라잖아. 무슨 말을 할까. 부드럽고 간단하게 말해야지. 상대가 기분은 상하지 않고 미안하기만 하도록 말을 준비해본다.
‘급했나보죠? 아무리 그래도 지하주차장은 다 비어있는데, 이 건 정말 심하네요.’
너무 약하다. 이 정도 파렴치라면 눈도 깜짝 안 할 거다. 강도를 높여야지. 아니야. 예수님은 이럴 때 어떻게 하실까.  그러자 내 안에서 부활하려는 그 무엇이 꿈틀대기 시작한다.  이 파렴치에게 부활절 선물로 ‘화내지 않음’을 주고 싶다. 내 내면의 변화가 흥미롭다. 무엇보다 인내를 잃지 않으려한다.
안경을 끼고 책을 펴든다. 마침 알랭 드 보통이 그의 ‘따분한 장소의 매력’에서 말한다.
“꾸짖고, 웃고, 사고, 팔고, 사랑하고, 미워하고, 가족과 함께-또 너 자신과 함께-상냥하고 정의롭게 함께 사는 것, 늘어지거나 자신을 속이지 않는 것은 더 주목할 만한 일이고, 더 드물고 더 어려운 일이다.”
집에 전화를 건다.
“…….먼저 가세요. 미안해요.”
진정제를 건네는 그가 사랑스럽다.
자꾸 시계를 본다. 아직 포기하지 않는다. 전화가 왔다.
“차 좀 빼 주시겠어요?”
말을 최대한 짧게, 날 세우지 말고, 군소리 안 하려고 애를 쓴다. 부활절인데. 그래도 내 목소리에 불꽃색이 묻어나지 싶다.
“우리 딸이 차를 가지고 갔거든요. 지금 예배 중일 텐데……. 연락을 해보겠습니다.”
떨떠름하게 전화를 받는 그 여자가 밉다. 어쩜 미안하단 말이 없냐. 그 엄마에 그 딸이지. 그래도 일단 희망이 생겼다. 마음이 급해진다. 지금 나오면 반가워서 두 말없이 손만 번쩍 들어 보일 것 같다. 성당으로 달려가는 내 모습이 동영상으로 보인다. 교회입구에 시선을 박고 있다. 그림자도 얼씬거리지 않는다. 그 여자에게 된통 화풀이를 할 걸 그랬나?  
울화지수 목하 수직상승. 그 때 어깨가 떡 벌어지고 노랑머리에 푸르딩한 눈을 가진 남자가 열쇠를 들고 나타난다. 저질러놓고 겁이 났군. 이 교회는 영어학원을 겸하고 있다고 했지. 말문이 막힌다. 그래도 해야지. 와중에도 한국인의 교양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사명감이 떠오르는 게 우습다.  
“네 차냐?”
“아니, 내 친구 차다.”
차를 이렇게 세우면 어떡하냐? - 이 말은 목구멍에서 한국말로 터졌다.
“나 엄청 화났거든. 정확하게 55분 기다렸다.”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허연 남자는 어깨를 으쓱해 보이고는 차를 후진시켰다. 자기는 상관없다는 눈치다. 나는 닭 쫓던 개꼴. 그 차에 입을 맞추다시피 하고 줄줄 따라 나왔다.
그 후, 나는 뒷북인줄 알면서도 영어로 말 만들기에 골몰했다.
‘네 친구에게 전해. 남에게 이렇게 폐를 끼치면서 예배만 보면 다냐? 예수님이 좋아하실 거 같아? 우리에게서 정말 부활해야 할 것은 말이야, 질서를 지키고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 거야.’


No.36
2007.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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